영화 조커(Joker, 2019)는 단순한 만화 원작 영화 그 이상으로 평가받습니다. 수많은 영웅 영화와 다르게, 이 작품은 주인공이 점차 악당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통해 사회의 어두운 면을 사실적으로 비춘다는 점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특히, 이 영화는 현대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조명하는 데 탁월한 메시지를 담고 있어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논란을 동시에 일으켰습니다. 조커는 불평등, 빈부격차, 혼란이라는 3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사회를 해부하고, 개인이 사회로부터 어떤 방식으로 소외되는지를 서늘하게 보여줍니다. 본 글에서는 이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조커가 담고 있는 사회풍자의 깊이를 분석해보고자 합니다.
불평등을 드러낸 조커의 삶
아서 플렉은 고담시의 한 하층민으로, 코미디언을 꿈꾸지만 현실은 그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으며, 이를 관리하기 위한 복지 지원을 받고 있었지만, 예산 삭감으로 인해 치료와 약물 지원이 중단되면서 그의 삶은 급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이 장면은 사회적 약자에게조차 최소한의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 복지 체계의 붕괴를 의미하며, 단순한 영화적 장치가 아닌 현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문제를 드러냅니다.
불평등은 영화 전반에서 매우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고담시의 공공서비스는 점차 축소되고 있으며, 아서처럼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의료적 접근조차 어려운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불평등은 단순한 자원 문제를 넘어, 권력과 관심의 분배에서 비롯된 시스템적 문제입니다. 영화 속 정치인들과 부유층은 하층민의 고통을 외면하며, 이로 인해 사회적 분노가 증폭되는 과정을 우리는 아서의 시선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아서의 웃음은 단순한 괴이한 특성이 아니라, 정신적 고통에서 비롯된 질병적 반응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를 숨겨야 하고, 이해받지 못하며 오히려 사회적 조롱과 폭력의 대상이 됩니다. 버스에서 아이에게 웃음을 보이려 했던 장면, 직장에서 총을 소지한 이유로 해고당한 장면, 지하철에서 폭행을 당하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장면 모두는 불평등한 사회 구조가 한 개인을 어떻게 몰아세우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영화는 아서의 개인적 결함을 탓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사회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하고, 끊임없이 밀려나는 인물로 묘사되며, 그가 조커가 되는 과정은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결과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처럼 조커는 불평등이라는 거대한 벽을 영화 내내 관객에게 밀도 높게 전달하며,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빈부격차의 상징적 대비
고담시는 극단적인 양극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공간으로 그려집니다. 상류층은 호화로운 건물과 사치스러운 파티, 철저한 보안 속에 살아가며, 하류층은 낙후된 아파트와 쓰레기 가득한 거리, 위태로운 일상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러한 시각적 연출은 빈부격차를 단순한 수치나 설정이 아닌, 생활의 전반적인 격차로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장치로 작용합니다.
특히 영화 속에서 아서가 자신을 토마스 웨인의 숨겨진 아들이라고 믿으며 웨인을 찾아가는 장면은 빈부 간 간극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토마스 웨인은 아서를 단순한 미치광이로 치부하고, 그의 말조차 들으려 하지 않으며 결국 폭력적으로 대합니다. 이는 실제 사회에서 권력자들이 약자의 목소리를 어떻게 무시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입니다.
빈부격차는 물리적인 거리뿐 아니라 감정적 거리, 즉 ‘공감의 단절’로도 드러납니다. 영화에서 상류층은 하류층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의 분노와 고통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여깁니다. 아서가 지하철에서 살인을 저지른 뒤, 뉴스는 이를 단순히 ‘광인의 범죄’로 규정하고, 진짜 문제를 들여다보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류층은 이 사건을 계기로 보안을 강화하고, 자기 보호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이러한 무관심은 하층민들에게 더 큰 소외감을 안기고, 영화 속 폭동과 분노의 연쇄를 촉발시킵니다. 조커의 존재는 단순한 악당의 탄생이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과 빈부격차가 만들어낸 결과로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영화는 이를 통해 ‘이 사회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고 있으며, 극단적인 결과에 도달하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의 인식 변화가 필요함을 강조합니다.
혼란 속에서 탄생한 영웅 아닌 악당
아서 플렉이 조커로 변모하는 과정은 단순한 범죄자의 탄생이 아니라, 혼란과 무정부 상태 속에서 상징적인 존재로 떠오르는 한 개인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단지 복수심이나 악의로 움직이는 인물이 아니라, 무시당하고 억압당한 끝에 사회적 폭발을 일으킨 존재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설정은 조커를 단순한 악당으로 볼 수 없게 만드는 요소이자, 영화가 전달하려는 핵심 메시지 중 하나입니다.
영화 후반부, 아서는 TV쇼에 출연하여 사회 전체에 분노를 표출합니다. 그는 단지 웃음과 오락을 제공하던 방송 프로그램에서 충격적인 살인을 저지르며, 자신이 얼마나 무시당해 왔는지를 세상에 알립니다. 이 장면은 대중매체가 어떻게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소비하고 희화화해 왔는지를 고발하는 듯하며, 그동안 침묵당했던 자가 어떻게 극단적인 방식으로 세상에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지를 강렬하게 보여줍니다.
조커를 영웅으로 추앙하는 시위대의 모습은 혼란의 정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명백한 살인자임에도, 억눌린 대중은 그를 사회의 대변자로 받아들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권위가 무너지고, 기존 질서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졌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현상을 상징합니다. 결국 영화는 ‘누가 진짜 악당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관객을 도덕적 딜레마에 빠뜨립니다.
아서가 조커로 변해가는 동안 우리는 그가 점차 현실을 왜곡하고 환상 속에 빠져드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그가 상상 속에서 연애를 했던 여성을 실제로는 만난 적조차 없었다는 설정은, 외로움과 고립이 얼마나 위험한 정신적 상태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암시합니다. 이러한 혼란은 사회 전체가 만들어낸 결과이며, 아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무관심이 초래한 집단적 실패라는 점에서 더욱 무겁게 다가옵니다.
조커는 단순한 범죄 영화도, 단순한 캐릭터 분석도 아닙니다. 이 영화는 우리가 외면해온 사회의 그늘과 구조적 결함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듭니다. 불평등, 빈부격차, 혼란이라는 키워드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도 깊이 맞닿아 있으며, 이는 단지 고담시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거울입니다. 조커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누가 진짜 악당인가?" 이제는 이 질문에 진지하게 답할 때입니다.